엔비디아가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2%짜리 회사 제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게 진짜야?" 싶었습니다. 엔비디아가 얼마나 까다로운 공급망 기준을 갖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라면 충분히 놀랄 만한 뉴스입니다. 그만큼 지금 메모리 공급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위권 업체들의 반란, 어디서 시작됐나
AI 열풍이 불면서 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HBM(High Bandwidth Memory)이었습니다. HBM이란 D램 칩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 올려 데이터 처리 속도를 극대화한 고대역폭 메모리로, 쉽게 말해 AI 연산을 위해 설계된 고성능 메모리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이 HBM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역설적으로 일반 D램 공급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범용 D램 평균 가격은 올해 4월 말 기준 16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7~8배 이상 올랐습니다(출처: D램익스체인지). 저는 이 수치를 보고 잠깐 눈을 의심했습니다. 범용 제품이 1년 만에 7배가 뛰는 건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대만 난야 테크놀로지입니다. 주로 PC용 범용 메모리를 생산해 온 이 회사가 2025년 1분기에 매출 490억 8700만 대만달러(약 2조 3000억 원)를 기록했는데, 이는 1년 전 대비 580% 증가한 수치입니다. 주가도 같은 기간 35대만달러에서 237대만달러로 6배 넘게 뛰었습니다. 저는 주변 투자 커뮤니티에서 난야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솔직히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요즘은 심심찮게 올라오는 걸 보면, 시장 분위기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체감이 됩니다.
낸드플래시(NAND Flash)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포착됩니다. 낸드플래시란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유지되는 비휘발성 저장 메모리로, SSD와 스마트폰 내장 저장공간에 쓰이는 반도체입니다. 글로벌 5위 낸드 기업인 샌디스크는 지난 1년간 주가가 30배 넘게 올랐고, 매출은 16억 9500만 달러에서 59억 5000만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구조조정 대상 수준의 하위 업체가 단기간에 이 정도 숫자를 만들어낼 줄은 제 경험상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금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AI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범용 D램·낸드플래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
- 선두 업체들이 HBM 생산에 집중하면서 범용 메모리 공급이 상대적으로 감소
-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면서 하위권 업체들의 협상력과 수익성이 동반 상승
D램 공급난이 만든 아이러니, 선두 업체의 딜레마
일반적으로 메모리 시장에서는 기술력 높은 업체가 수익성도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공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관련 보고서들을 찾아보면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HBM을 가장 많이 팔아야 할 SK하이닉스 같은 선두 업체가 오히려 하반기 수익성 둔화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BNK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HBM4(6세대 HBM) 매출 비중이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HBM4란 D램을 12~16단으로 적층해 초고속 데이터 전송을 가능하게 한 차세대 메모리로, 기술 난이도가 높은 만큼 수율(Yield) 관리가 수익성의 핵심입니다. 수율이란 생산된 전체 반도체 중 정상 작동하는 제품의 비율을 뜻하며, 수율이 낮으면 같은 양을 생산해도 실제 팔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들어 수익성이 떨어집니다.
결국 선두 업체들은 이미 체결한 HBM 공급 계약을 이행하면서 생산 능력을 거기에 집중해야 하고, 가격이 폭등한 범용 D램 시장에서 수혜를 보기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반면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낮아도 범용 제품만 꾸준히 만들어 온 업체들이 공급 부족 덕분에 유례없는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시장 논리로 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LPDDR(Low Power Double Data Rate)이 엔비디아 공급망에 등장한 것도 이 흐름의 연장선입니다. LPDDR이란 저전력으로 설계된 모바일용 D램 규격으로, 일반적으로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주로 쓰이는 제품입니다. 그런데 전력 효율이 중요한 AI 추론 서버 시장이 커지면서, 난야의 LPDDR도 엔비디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공급난이 기술 문턱을 낮춘 셈입니다(출처: 반도체산업협회(SIA)).
투자 리스크, 지금 이 호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저는 이 상황을 보면서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주변에서 난야, 샌디스크 같은 이름들이 투자 커뮤니티에 오르내리고, "AI 시대니까 무조건 오른다"는 식의 낙관론이 확산되는 분위기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업황은 원래 변동성이 매우 큰 산업입니다. 제 경험상, 과거에도 업황 호황기에는 하위권 업체들까지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이클이 꺾이면 기술력 없는 업체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습니다. 2022~2023년 메모리 다운턴 당시를 생각해보면, 재고 급증과 가격 붕괴가 불과 몇 분기 만에 찾아왔습니다. 지금의 공급난이 장기화된다는 보장도 없고, 대형 고객사들이 자체 재고를 늘리거나 새로운 공급처를 확보하기 시작하면 시장 분위기는 빠르게 바뀔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 하위권 업체들의 호황은 공급 부족이 만들어낸 구조적 수혜에 가깝습니다. 공급이 정상화되면 고객사들은 다시 기술력, 안정성, 수율, 납기 신뢰도를 따지기 시작할 것이고, 그때 선두 업체들의 경쟁력이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지금의 호황만 보고 장기 경쟁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입니다.
지금 메모리 시장은 분명 구조적으로 달라진 측면이 있습니다. AI 수요가 메모리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어떤 업체가 이 흐름에서 진짜 수혜자가 될지는, 단기 실적보다 기술 로드맵과 고객 포트폴리오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